PR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너럴사(General Dynamics), 즉 G.D.의 F-16 전투기와 맥도널드사(McDonnell Douglas), M.D.의 F-18 전투기의 PR전쟁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랜 프리젠테이션 경쟁 끝에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는 F-16의 PR 대행사가 되었다.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무기관련 일에 직접 개입하게 되어 흥미를 느꼈을 뿐 아니라 그 상대가 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조안 리(Joanne Lee)라 더욱이 해볼 만 한 것이었다.
그때의 일들을 단편적으로 떠올려보면,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치는 것이 어김없이 새벽 2-3시에 전화를 걸어오는 조 조플링(Joe Jopling)씨이다. 오랜 기간 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F-16 무기를 팔아온 국제 마케팅 담당이사인 그는 겉보기엔 허름하고 어수룩하고 격식도 없었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단련된 전투기 판매의 “도사”임에는 틀림없었다. 막 잠에서 깨어 졸린 목소리로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우리말도 아닌 영어를 듣고 또 말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가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와중에서는 달콤한 연인의 목소리라도 깨갱이는 바이올린 소리 이상일 수 없을 텐데, 대강대강 넘어갈 수 있는 넋두리도 아니고 아주 심각한 얘기를 아주 은밀히 나누어야만 했다. 새벽녘에 태평양을 가로질러서 울려오는 전화벨 소리는 악몽과도 같았다. 영어로 전략을 논의하면서 까다로운 질문에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그 이후 새벽에 전화벨 소리가 울리기만 하면 가슴이 덜컥한다. ‘조 조플링?......’ 물론 PR 대행 계약시 언제라도 집에 전화를 걸 수 있다는 양해를 받아놓은 그는 새벽에 전화를 걸어서 잠을 깨우고 고단함을 더하는데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 한 가지는 국방부 출입기자들을 미국 제너럴 본사로 초청하여 F-16 생산시설을 보여주었을 때다. 이른바 미디어에 노출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견학(media familiarization tour) 같은 것으로 기자들에게 직접 현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경우 그 당시나 지금도 그렇지만 초청 주체인 정부부처나 기업체에서는 비행기표와 숙식을 부담하고 거기에 더하여 해외에서 쓸 수 있는 약간의 경비까지 보조하는 관례화되어 있다. 이러한 한국의 관례를 설명하였더니, G.D. 본사의 담당자는 정색을 하고 말한다. “현금은 1센트도 안 됩니다. 만약 현금을 기자에게 준 것이 밝혀지면 난 몇 십 년 일한 회사에 당장 사표내야 합니다. 그 대신 영수증 처리할 수 있는 경비를 최대한으로 해서 최고의 대접을 하겠습니다.” 이래서 결국 1센트의 현금도 지원도 없이 국방부 출입기자들의 미국 견학을 마치게 되었다. 사실 우리 언론 상황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을 한 셈이다.
G.D. 한국지사의 K지사장이 F-16과 제너럴사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예방한 적이 있었다. 약 1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다. 예방시간은 한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어 단 1초라도 낭비되어서는 안 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우리의 입장을 잘 설명할까를 고심했다. 흔히들 로비(Lobby)라고 얘기하는 것을 제대로 한번 해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사실 로비라는 말의 뉘앙스는 우리나라에서 부정적이다. 소수의 이익집단이 편법으로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결정권자들에게 정책적 입장을 설득적 메시지로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로비이다. 이는 정당하며 합법적인 활동으로 서구사회에서는 일종의 민주적인 정치참여 활동으로 간주되고 있다. 로비활동에서 PR전문대행사의 역할은 주로 정책결정자와 정책적 입장을 지닌 단체 혹은 개인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즉 정책적 입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때 우리는 효과적 메시지 전달을 위해 고심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철저히 준비했기 때문에 G.D.의 정책적 입장을 경제수석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다. 경제수석은 G.D.의 입장을 잘 이해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정부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 모든 일간지의 1면 5단 통 광고를 하자는 전략을 제안했다. 그 당시 약 2억이 넘는 예산이 소요되는 것이다. F-16이 서울 상공을 나는 사진에다 “대한민국 공군의 동반자 F-16"이라는 문구를 넣어 광고를 하자는 전략에 제너럴사의 핵심 간부들은 동의했지만 광고가 나오기 3일 전 느닷없이 취소가 가능한지에 대해 전화가 왔다. 무기 광고는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전 일간지 1면에 5단 톱으로 광고가 게재되었을 때 미칠 영향력이 좀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불가능합니다”라는 한마디로 일축하고, 광고를 게재했다. 전 일간지에 게재된 F-16 광고는 최종 마무리 전략이었다. 전 일간지의 1면 5단 통 광고를 낸 일은 극히 드문, 처음이나 다름없는 마무리 PR 전략이었다고 자부한다.
그 후 조선일보에 조안 리와 나에 관한 대형 2면에 걸친 기사가 게재되었다. 당시 기사를 쓴 진성호 기자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는 초상집 분위기인 반면 조안 리측은 축제 분위기라고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실제 우리는 초상집 분위기도 아니었고 단지 최선을 다했으나 떨어져서 무척 아쉽다는 감회에 잠시 젖었을 뿐이다. 인생이나 사업에는 영원한 승자나 패자가 없고 또 최선을 다해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 있지 않았는가.
‘다시 시작하자.’63빌딩에서 한강을 내려다 보며 내가 한 생각이다. 다시 상황은 바뀌어 정부에서 최종적으로 F-16으로 결정하게 된다. 이를 조안 리는 “스물 셋의 사랑 마흔 아홉의 성공”이라는 저서를 통해 F-16 선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녀가 저서에서 언급한 대로 PR인으로서 그녀의 전문성은 높이 살 만하다. 단 그 전문성은 MD사의 PR을 대행한 것에 한해서이며 F-16에 대해서라면 그 전문성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녀가 M.D.의 F-18을 위해 노력한 것처럼 나 또한 PR전문가로서 나의 고객인 G.D.의 F-16을 위해 그야말로 고객이 OK할 때까지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PR인으로서 나의 신조이다. 그때 G.D. 한국지사의 K사장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김사장, F-16은 쏘나타고 F-18은 그랜저입니다. 아니 실제 쏘나타와 그랜저는 품질상 차이가 거의 없는데 F-16과 F-18은 그 정도의 미미한 차이도 나지 않습니다. 쏘나타 120대와 그랜저 80대(F-16 대 F-18의 가격이 120 대 80이다)로써 택시영업하자면 어느 것이 더 유익한지는 한참 따져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F-18이 아닌 F-16이 최종 선정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요즘도 무기 관련 수사 때마다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다. 상당히 깊이 관련되어 일을 성공리에 마무리했으나 정도를 걷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소신있게 최선을 다했기에 수사대상으로 언급조차 된 적이 없다. 나는 이를 PR인으로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PR전문인으로서 윤리성을 가장 높은 덕목으로 삼기에 더욱이 그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