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 반정부 투사로 가장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지금의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다. 그의 동교동 자택에서였다. 나는 당시 로이터통신 주한 특파원이었고 로이터 통신 주 북경 특파원인 이 안 멕켄지씨와 함께 그를 인터뷰할 예정이었다. 원래 인터뷰 예정 시간은 삼십 분이었으나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야당 지도자와 기자들간의 심각한 인터뷰가 아니라 형님이 아우들이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듯 편안한 자리였다.
그는 월남전 종군기자 시절 총상을 입어 다리를 절룩거리는 멕켄지 특파원에게 어떻게 다리가 불편하게 되었는지 자상하게 물으면서 한약 처방까지 내려 주었다. 특히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내가 통역의 역할을 맡아 진행하는데 느닷없이 영어로 직접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차분히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띄엄띄엄 영어를 하는데 자기의 생각을 주요 단어 중심으로 설명하며 아주 명확히 전달해 나갔다. 나중에 인터뷰를 끝낸 멕켄지 특파원이 김 대통령의 영어는 앞뒤 논리의 연결이나 논점이 거의 완벽하여 거의 90% 이해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멕켄지가 쓴 기사는 물론 김대중 대통령의 입장을 아주 잘 반영한 내용이었다.
동교동의 조그마한 방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만남은 PR측면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메시지를 하나 던져준다. 그때 그 어려운 시절 국내 신문 등은 민주 투사와 인터뷰가 불가능했고 인터뷰 한다고 해도 기사화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외신은 그러한 압력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외신이 어떻게 보도하는가에 따라 박정희 정부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압력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을 ‘내사람’으로 만들어 설득(persuasion)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PR의 기본이 아닌가? 그때의 김대중 민주투사가 바로 그런 타고난 PR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월남전 종군기자까지 한 로이터 통신의 베테랑 기자를 ‘김대중 팬’이 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을 보고 나는 그야말로 휼륭한 PR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멕켄지 기자와의 인터뷰나 미국 의회에서 그리고 UN에서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여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그의 힘은 피나는 영어와의 전쟁으로부터 가능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기자를 친구로 만드는 뛰어난 재주를 가진 PR인이 또 있다. 내가 한국 최초의 영문 경제잡지 비즈니스 코리아(Business Korea) 편집인 및 발행인이었던 시절 파키스탄 정부의 초청으로 당시 파키스탄의 지아 얼 학(Zia Ul-Haq) 대통령을 만난 일이 있다. 내가 파키스탄을 방문하는 동안 내가 납치되었다고 국내에서는 큰 소란이 일어나기도 했었기에 더욱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인터뷰를 위해 파키스탄 대통령 궁에 도착해서 약 5분간을 기다리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들어가 "각하, 안녕하십니까(How do you do, Mr. President)." 인사를 하니 곧바로 나에 대한 모든 인적사항을 줄줄이 다 얘기하면서 "왜 부인과 같이 오지 않았느냐?" "아이들이 둘이라고 하는데 나이 차이는 얼마냐?" 하는 것이다. 나의 개인적 인적사항을 낱낱이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보좌관을 통해 정보를 얻었겠지만 배석자 하나 없이 단둘이 독대를 하는데 백년지기가 따로 없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그의 나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좋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아 대통령은 혼자 앉는 의자에서 내려와 내가 앉아있는 3인용 소파 로 다가오더니 중요한 얘기를 할 때마다 나의 손을 꼭 잡는 것이 아닌가. 약 1시간 30분간 아주 친근하게 인터뷰에 응하는 지아 얼 학 대통령의 기자를 대하는 다정한 모습은 PR인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누구도 그의 그런 모습에서 부토 전 대통령을 사형시킨 혁명가 지아 대통령의 모습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파키스탄 공보실의 사진담당 직원이 내가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을 칼라 필름으로 촬영해서 필름 1통을 그대로 주었다. 기념사진으로 한두 장을 현상해 주기보다는 보도용 사진으로 용도에 맞게 사진을 확대, 축소해 뽑을 수 있도록 필름 1통을 그대로 주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약 2개월 뒤 지아 대통령이 방한해서 신라호텔에 머무르게 되었다. 일을 끝내고 11시 경 집에 도착했더니 파키스탄 대통령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었다는 아내의 전갈이다. 약 15-20분 내로 신라호텔로 오면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을 전해받은 아내는 백방으로 나를 수배했으나 그때는 지금처럼 핸드폰이나 삐삐가 많지 않았을 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호텔로 전화를 하니 그 다음날 이른 아침 스케줄 때문에 대통령은 잠이 들었다는 소식을 당시 주한 파키스탄 대사가 전해주었다. 당시 지아 대통령은 파키스탄의 강력한 지도자였다. 그는 이슬람 상황에서 어떻게 경제를 부흥시키는가 고심하고 있었다. 강력하고 큰 포부를 갖고 있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한국의 한 언론인을 스케줄에도 없이 밤 늦게 만나겠다고 집에까지 전화를 걸어준 데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필자는 주한 파키스탄 대사와 자주 만나 한국과 파키스탄의 관계 증진 방안에 대해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파키스탄의 장관, 국회의원, 실업가 등이 방한할 때마다 대사관저에 초청되어 그들과의 관계를 증진시키기도 했다.
인간적인 따뜻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PR의 기본임을 김대중 대통령과 고 지아 대통령은 보여주었다. 그들에게는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서 비롯되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바로 그것이 나를 감동시켰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