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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년 03월 06일 신기하 의원 시신부터 수습하라


대한항공 추락 당시 많은 사람들이 탑승자 명단에 신기하 의원의 이름이 포함된 것을 보고서 앞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한 정치인을 잃었다는 슬픔을 금치 못했다. 비단 그가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항상 명확한 논리를 전개하면서 정치에 소신있게 임했던 보기 드문 정치인이었기에 아쉬워하는 마음이 더했는지 모른다.

괌 당국은 여러 채널을 통해 “신기하 의원의 시신부터 먼저 수습하라”는 메시지를 받았으나, 위기발생시의 지침을 제시한 위기관리 매뉴얼 따르면 “어린아이, 노약자, 여자, 성인남자” 등의 순으로 사고처리를 해야 한다. 신기하 의원은 제일 마지막 순서였고, 결국 괌 당국과 한국 정부 및 국회간에 신기하 의원 시신 수습과 관련하여 상당히 많은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괌은 미국령으로 미국적인 가치관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에 우리와는 문화적인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데다 특히 추락사고는 미국 본토에서 관리들이 직접 와서 개입하고 있었기에 갈등의 폭은 더욱 컸다.

그때 우리의 언론보도는 그 심각한 문화적 갈등을 다루고 있는데, 조선일보 박재영 기자가 1997년 8월 11일 2면 기자수첩에 쓴 “괌 현장의 문화충돌” 기사는 문화충돌을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10일 유족들을 대상으로 시신 사진 확인작업이 벌어진 괌 퍼시픽 스타 호텔. 이날 사진 확인이 있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얼굴이 손상된 시신이나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 미국의 「원칙」과 시신을 보지 못한다면 사진이라도 봐야 한다는 한국적 「정서」가 서로 상충된 것이다. 미국은 참혹한 모습을 본 가족들의 충격을 예방한다는 점과 함께, 육안으로 사람을 확인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래서 희생자들의 치열 X선 사진과 지문자료를 요청했고 50명의 의사를 동원, 이틀 동안 유족들과 이들의 신원에 대해 면담했다는 것이다. 이 절차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한 시신의 신원은 모두 밝혀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유가족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모든 시신 사진을 대책본부 옆에 전시하라는 주장도 있었다.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미국은 『사진은 유족들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다』며 반대했지만 수 차례의 논쟁 끝에 비공개 원칙에서 물러섰다. 이처럼 이곳에는 미국과 한국의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정서와 관행이 달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매일 발생한다. 대책본부에 설치된 유가족 상담소가 한산한 것도 이런 문화차이의 한 사례다.

미 적십자사는 유가족의 정신적인 충격을 달래기 위해 심리 학자까지 배치했지만 상담 건수는 의외로 적다. 유가족들의 생활지침을 담은 복사물도 가져가지 않아 분향소 옆에 수북이 쌓여있다. 서로 감싸 안은 채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흐느껴야 오히려 마음이 진정되는 한국인들을 미국인들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들이다. 9일 니미츠 힐을 방문했던 유가족 중에서는 사고 현장 주변의 흙을 담아온 사람도 있다. 다시 보지 못할 가족을 영원히 품에 두고 싶어서다. 언덕 아래쪽 부서진 기체가 놓여있는 바로 그곳에 꽃을 던지고 소주를 부으면서 울부짖는 유가족도 있었다. 사고 현장에서 1.5km 떨어진 도로변에 조용히 와서 묵념을 하고 가는 미국 유가족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이번 사고를 보도하는 괌 현지 신문의 한 기자는 이런 표현을 썼다. 『한국인들은 살아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긴다.』그는 이 기사에서 문화와 관행이 달라 한국과 미국이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적고 있다. 이번 사고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 역시 이러한 한-미간의 문화차이가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는 느낌이다. <괌>

1997년 8월 11자 중앙일보 김용일 기자가 보낸 취재 일기도 참사 현장의 문화 갈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중앙일보 기사는 "대한항공 801편 참사로 가족을 잃고 괌을 찾은 유가족들은 현장에서 또 다른 고통을 맛봐야 했다. 사고 처리를 둘러싸고 드러나는 한, 미간의 현격한 인식 차에 따른 속끓임들이다. 유가족과 미 당국간의 '삐걱거림'은 지난 7일 오전 유가족들이 탄 대한항공 특별기가 괌에 도착하면서 비롯됐다. 유가족들은 즉시 현장에 가보길 원했다. 그러나 미 당국 측의 불허방침은 미동도 안 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 한국일보 97년 8월 8일 35면 사회면 뉴스는 ‘미군 “버스서 내리지 마라” 통제에 “관광 온 줄 아느냐” 항의와 분노’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괌의 니미츠 힐은 통곡의 언덕이 돼 버렸다. 7일 대한한공 801편기 추락참사 현장을 방문한 유족들은 시신조차 찾지 못한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유족들은 격한 슬픔에 더하여 울분과 분노마저 느껴야 했다. 희생자의 넋이 깃들여 있을 사고현장 땅을 한번 밟아 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먼 발치서 달리는 버스 안에서 태극무늬가 선명한 대한항공 801편기 꼬리날개만 바라봐야 하는 처지에 유족들은 격분했다. 유족 3백 여명은 이날 상오 11시께 적십자회원, 자원봉사요원들과 함께 7대의 버스에 분승, 대책본부가 있는 퍼시픽 스타 호텔을 떠났다. 얼마쯤 달렸을까. 니미츠 힐로 향하는 6번 도로를 버스가 느린 속도로 오를 때쯤 『미군과 관계 당국이 사고원인 조사를 위해 현장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버스에서 내릴 수 없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순간 버스 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술렁임은 그러나 야자수 나무 사이로 사고항공기의 꼬리날개 등 잔해가 언뜻언뜻 비치기 시작하자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다. 유족들은 『우리가 한가롭게 관광이라도 하러 온 줄 아느냐』며 거세게 항의했고 이내 버스 안은 울음바다로 변해 버렸다. ”

이런 문화적 갈등의 심각성을 이해한 괌 정부 당국은 한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한국적 정서에 익숙한 괌 대학(University of Guam)에서 관광학교수로 있는 스텐 멕게이(Stan McGahey)씨를 인터컬처럴 커뮤니케이션 자문으로 임명하여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출 수 있는 방법들을 강구하기로 했다. 국제적인 사고현장에서는 인터컬처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된 것이 괌 대한항공 추락사고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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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의 김경해입니다. 큰생각과 큰PR을 위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by 김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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