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PR현장 24시 이야기

2008년 10월 30일 17시 22분

새벽 3시 30분 단잠을 깨운 괌행 대한항공기

미스터 김, 즉시 CNN을 켜 보세요. 대한 항공이 오늘 새벽 괌 공항 착륙 직전 니미츠힐에 추락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조치를 상의하기로 합시다. 괌정부 관광청의 마케팅 부장인 필라 라구아나(Pilar Laguana)씨가 집으로 전화한 것은 새벽 3시 30분이었다.

사건의 개요는 승객과 승무원 231명을 태우고 1997년 8월 5일 오후 8시 40분 서울을 출발 남태평양 괌으로 향하던 대한 항공 801편 보잉747 여객기가 6일 새벽 착륙을 앞두고 레이다에서 실종 괌 공항 인근 니미츠힐에 추락했다"는 것이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CNN을 켜보니 대한항공 사고소식이 긴급뉴스로 전해지고 있었다. PR업무에 종사하면서 새벽잠을 깨우는 전화를 자주 받다보니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으나 괌정부 관광청의 한국내 마케팅 담당자로 처음 겪는 대형 인명사고에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잠시 사태 수습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에 골몰하고 있는데 1시간도 채 안 된 새벽4시반 경에 신문과 방송 기자들의 전화가 계속 집으로 걸려왔다. 괌정부 관광청으로부터 새로운 뉴스가 들어왔는지의 여부를 캐묻는 것들이었다. 기자들은 "사고원인에 대해 괌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 "신기하 의원에 대해 소식들은 바가 있는가?" 등 당장 보도해야 할 기사거리들에 대해 끈질기게 물어왔다. 신기하 의원이 승객명단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자들을 통해 알고는 괌정부 관광청에다 즉각 이 사실을 통보하여 대처하도록 했다. 

그리고 CNN채널을 돌려 우리나라 TV채널로 옮겨오니 모든 채널에서 괌 사고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CNN은 승객수를 크게 늘려서 보도했으나, 한국 TV의 보도는 대한항공의 확인을 거친 숫자라서 정확하였다. 나는 한국TV에 나오는 주요 내용을 즉각 메모하여 괌정부 관광청장에게 전달하였다. 괌정부 관광청장은 귀테레스 괌주지사가 사고현장에서 직접 사상자 수습에 나서고 있다고 사태수습을 위한 설명을 했다.

괌정부 관광청장과의 전화를 끊고 있는데 모 일간지의 한기자가 "사고원인에 대해서 알고 있는 바가 없느냐?"는 전화를 했다. "전혀 알고 있는 바가 없고 또 비행기는 추락하였는데 어떻게 몇 시간 내에 사고원인을 즉각 규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기자들의 치열한 경쟁적 보도 태도에 새삼 놀랐다. 2년이 넘어서야 규명되는 사고원인을 몇 시간만에 알아내려고 하는 기자들의 직업은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사고원인과 관련해 여러 다른 이해집단이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선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8월7일 "KAL기 참사 대한항공-괌공항-보잉사, 사고원인 신경전"이라는 표제를 동아일보 기사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막대한 인명피해를 낸 대한항공801편 추락사고의 원인을 둘러싸고 대한항공과 괌공항, 사고기제작사인 미국 보잉사가 첨예한 신경전을 벌리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번 사고와 관련, 괌의 아가냐공항의 활공각 유도장치(Glide Slope)가 고장나 있었던 점, 공항과 활주로의 관리 주체가 각기 민간과 군으로 이원화돼 있어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점 등 공항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착륙각도를 안내하는 활공각 유도장치가 고장나 계기 비행이 불가능했는 데다 사고 당시 태풍 "티나"의 영향으로 공항부근의 기상조건이 극히 나빴다는 점을 부각, 조종사의 대처능력보다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강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측은 대한항공이 여름철 초성수기를 맞아 통상적인 운항기종인 292석의 A300 대신에 B747-300을 투입하고, 사고기가 서울~제주를 왕복운항 뒤 곧바로 괌으로 출발하는 등 항공기 운영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통상적인 기체 체류기간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항공기를 운영하다보니 필연적으로 정비 등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또 사고기를 제작한 보잉사는 B747기종의 사고확률이 100만분의 1.78에 불과할 정도로 사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등 이번 사건과 항공기 제작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실제 괌공항 당국에 의하면 활공각 유도장치는 "정기점검" 중이었고 이 사실이 사전에 각 항공사에 미리 통보되었다고 한다.

세계 어느 공항이나 활공각 유도장치는 일년에 얼마간 "정기점검"을 거친다는 것이 괌공항 당국자의 설명이었다. 

아침 일찍 회사에 나와서 대한항공의 기자회견 내용과 정부당국의 발표내용을 정리해서 즉각 괌정부 관광청장에게 전화로 보고하고 나서 잠시 앉아있자니 10년 동안 태평양의 작은 섬을 관광지로 한국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괌으로 밀려올 한국기자들을 돕기 위해 직원 한 명을 괌으로 파견하였다. 

괌사고는 천태만상의 이문화(異文化)간 커뮤니케이션(intercultural communication)체험을 하게 하였다. 다양한 괌사고 관련 PR업무를 수행하면서 이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이 PR의 중요한 영역으로 떠오르게 되는 이유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괌과 한국의 언론행태나 장례문화가 다르고, 사고 수습시의 우선 순위가 달라서 큰 어려움을 겼었다. 특히 현지의 업무처리 방식, 결국은 문화적인 가치관 차이 때문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사태 수습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유족들이 괌에 도착했을 때는 현장 보존을 위해 접근을 막아 유족들로부터 아주 심한 반발을 받았다. 

거의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괌에 특파되어 괌발 기사를 송고하는 와중에, 이러한 문화적 갈등에 관한 기사가 많이 게재됐다.

나는 괌 주지사가 해소시킬 수 있는 최상의 PR전략이라고 판단하고 주지사의 방한을 적극 권유했다.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괌 주지사가 희생자들의 영령 앞에 고개 숙이는 것이 한국인들의 정서를 감안할 때 최선임을 제안하자 괌 주지사는 방한을 결심하게 했다. 

방한한 귀테레스 괌 지사는 희생자 빈소를 찾아 한국식으로 절을 하면서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처음 살벌했던 유족들과 괌 지사간의 긴장된 분위기는 괌 주시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슬픈 마음을 한국식으로 잘 표현해내었기에 많이 누그러졌다. 나 자신 온몸이 식은 땀으로 젖은 것을 발견하고 PR인의 어려운 처지를 다시한번 실감하였다. 괌정부 당국은 며칠 후 주요 일간신문에 "큰 슬픔을 치유하는 작은 위안이나마 됐으면" 이라는 제목의 전면광고를 내고 괌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추락사고 희생자와 유족을 애도했다. 

15만 괌 주민을 대표한 이 광고에서 그는 "괌에 사는 누구나 간단한 한국어 인사말 정도는 할 수 있을 만큼 다정하게 지냈기에 슬픔은 더 크고 깊다"며 희생자 추모공원 조성 계획 등을 밝혀 유족들의 슬픈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주지사가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유족들을 만나는 정면 돌파 전략이 빛을 발했다.

 

F-16전투기 PR전투 

한국 PR 역사에서 제너럴 다이나믹스(General Dynamics), 즉 G.D.의 F-16 전투기와 맥도널드 더글라스(McDonnell Douglas), M.D.의 F-18 전투기의 PR 경쟁은 한국 최초의 "PR전"으로 알려져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는 F-16의 PR 대행사가 되었다.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무기관련 일에 직접 개입하게 되어 흥미를 느꼈을 뿐 아니라 그 상대가 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조안 리(Joanne Lee)라 더욱이 해볼 만 한 것이었다. 조안리 사장은 저서 『스물셋의 사랑, 마흔 아홉의 성공』에서 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들이(G.D.) 뒤늦게 홍보전쟁을 선포하면서 그 시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들이 홍보대행계약을 맺은 회사는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였다. 로이터통신의 서울 특파원을 지냈고 "코리아헤럴드" 경제부 차장을 거쳐 "비지니스 코리아"의 발행인으로 일하고 있던 김경해씨가 이끄는 회사였다. 그는 또 서강대 영문과 1년 후배이기도 했다. 이로써 그와 나는 어쩔 수 없이 희대의 홍보전쟁에서 양대 사령탑으로 격돌해야만 했다.

조안 리 사장과는 지금도 자주 만난다. 공식 혹은 비공식 행사에서 만날때마다 조안 리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돌아가신 전 서강대학교 학장 킬로렌 신부님과의 사랑얘기는 저서에도 잘 나타나 있으며 지금도 "킬로렌 장학금"을 내놓아 후배들을 위해 뜻깊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존경한다.  

그때의 일들을 단편적으로 떠올려보면,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치는 것이 어김없이 새벽 2-3시에 전화를 걸어오는 G.D의 국제 담당이사 조 조플링(Joe Jopling)씨이다. 오랜 기간 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F-16 무기를 팔아온 국제 마케팅 담당이사인 그는 겉보기엔 허름하고 어수룩하고 격식도 없었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단련된 전투기 판매의 "도사"임에는 틀림없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태평양을 건너 들려오는 영어를 전화선을 통해 듣고 또 영어로 말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가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상황에서는 달콤한 연인의 목소리라도 귀찮을 수밖에 없을 텐데 대강대강 넘어갈 수 있는 넋두리도 아니고 아주 심각한 얘기를 아주 은밀히 나누어야만 했다. 새벽녘에 태평양을 가로질러서 울려오는 전화벨 소리는 악몽과도 같았다.  

영어로 전략을 논의하면서 까다로운 질문에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그 이후 새벽에 전화벨 소리가 울리기만 하면 가슴이 덜컥한다. "조 조플링?......" 물론 PR 대행 계약시 언제라도 집에 전화를 걸 수 있다는 양해를 받아놓은 그는 새벽에 전화를 걸어서 잠을 깨우고 고단함을 더하는데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 한 가지는 국방부 출입기자들을 미국 제너럴 다이나믹스 본사로 초청하여 F-16 생산시설을 보여주었을 때다. 이른바 미디어에 노출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견학(media familiarization tour) 같은 것으로 기자들에게 직접 현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경우 그 당시나 지금도 그렇지만 초청 주체인 정부부처나 기업체에서는 비행기표와 숙식을 부담하고 그 외 필요한 약간의 경비지원에 대해서는 각 회사마다 다른 원칙을 갖고 있었다. G.D. 본사의 담당자는 경비지원에 대해서는 G.D.의 분명한 입장을 밝혓다. "현금은 1센트도 안 됩니다. 만약 현금을 기자에게 준 것이 밝혀지면 난 몇 십 년 일한 회사에 당장 사표내야 합니다. 그 대신 영수증 처리할 수 있는 경비를 최대한으로 해서 최고의 대접을 하겠습니다." 이래서 결국 1센트의 현금 지원도 없이 국방부 출입기자들의 미국 견학을 마치게 되었다.  

G.D. 한국지사의 K지사장이 F-16과 제너럴다이믹스사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나와 함께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예방한 것이 있었다. 예방시간은 한 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어 단 1초라도 낭비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우리의 입장을 잘 설명할까를 고심했다. 흔히들 로비(Lobby)라고 얘기하는 것을 제대로 한번 해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로비라는 말의 뉘앙스는 우리나라에서 부정적이다. 소수의 이익집단이 편법으로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로비란 정책결정권자들에게 그 정책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는 작업이다. 이는 정당하며 합법적인 활동으로 서구사회에서는 일종의 민주적인 정치참여 활동으로 간주되고 있다. 로비활동에서 PR전문대행사의 역할은 주로 정책결정자와 정책적 입장을 지닌 단체 혹은 개인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즉 정책적 입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때 우리는 효과적 메시지 전달을 위해 고심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철저히 준비했기 때문에 G.D.의 정책적 입장을 경제수석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다.
 

경제수석은 G.D.의 입장을 잘 이해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정부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 모든 일간지의 1면 5단 통 광고를 하자는 전략을 제안했다. 그 당시 약 2억이 넘는 예산이 소요되는 것이다. F-16이 서울 상공을 나는 사진에다 "대한민국 공군의 동반자 F-16"이라는 문구를 넣어 광고를 하자는 전략에 제너럴 다이나믹스사의 핵심 간부들은 동의했지만 광고가 나오기 3일 전 느닷없이 취소가 가능한지에 대해 전화가 왔다. 무기 광고는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전 일간지 1면에 5단 톱으로 광고가 게재되었을 때 미칠 영향력이 좀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불가능합니다"라는 한마디로 일축하고, 광고를 게재했다. 전 일간지에 게재된 F-16 광고는 최종 마무리 전략이었다. 전 일간지의 1면 5단 통에 무기 광고를 동시에 낸 일은 극히 드문, 처음이나 다름없는 마무리 PR 전략이었다고 자부한다. 

그 후 조선일보에 조안 리와 나에 관한 대형 2면에 걸친 기사가 게재되었다. 당시 기사를 쓴 진성호 기자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는 초상집 분위기인 반면 조안 리측은 축제 분위기라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실제 우리는 초상집 분위기도 아니었고 단지 최선을 다했으나 F-18이 선정되어 무척 아쉽다는 감회에 잠시 젖었을 뿐이다. 인생이나 사업에는 영원한 승자나 패자가 없고 또 최선을 다해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G.D.의 PR대행사로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으며 허전한 마음을 물론 있었지만 전화 한번 걸거나 우리회사를 방문해 취재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초상집"이라고 기사쓴 것이 무척 못마땅하였다. 

"다시 시작하자." 63빌딩에서 한강을 내려다 보며 G.D.의 K지사장과 내가 나눈 말이다. 다시 상황은 바뀌어 정부에서 최종적으로 F-16으로 결정하게 된다. 이를 조안 리는 "스물 셋의 사랑 마흔 아홉의 성공"이라는 저서를 통해 F-16 선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녀가 저서에서 언급한 대로 PR인으로서 그녀의 전문성은 높이 살 만하다. 단 그 전문성은 MD사의 PR을 대행한 것에 한해서이며 F-16에 대해서라면 그 전문성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녀가 M.D.의 F-18을 위해 노력한 것처럼 나 또한 PR전문가로서 나의 고객인 G.D.의 F-16을 위해 그야말로 고객이 OK할 때까지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사실 이런 대형 무기 관련 프로젝트에는 PR대행사의 역할이 한정된 측면이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PR대행사가 좌지우지 하는 것도 아니며, 또 PR만 잘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 것이다. 선정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고려할 사항들이 있으며 어디에다 더 무게를 두는가에 따라 선택이 되는 것이다.

특히 PR인들은 자기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지 경쟁 고객 제품의 선택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얘기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이번의 경우도 이런 사안에 대해 거론하는 것은 M.D.의 몫이지 M.D.의 PR대행사의 몫은 아니다. 

그때 G.D. 한국지사의 K지사장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김사장, F-16은 쏘나타고 F-18은 그랜저입니다. 아니 실제 쏘나타와 그랜저는 품질상 차이가 거의 없는데 F-16과 F-18은 그 정도의 미미한 차이도 나지 않습니다. 쏘나타 120대와 그랜저 80대(정부의 예산으로 F-16은 120대 구입할 수 있으나 F-18은 80대만 구입할 수 있었다)로써 택시영업하자면 어느 것이 더 유익한지는 한참 따져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F-18이 아닌 F-16이 최종 선정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요즘도 무기 관련 수사 때마다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다. 상당히 깊이 관련되어 일을 성공리에 마무리했으나 정도를 걷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소신있게 최선을 다했기에 수사대상으로 언급조차 된 적이 없다. 나는 이를 PR인으로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PR전문인으로서 윤리성을 가장 높은 덕목으로 삼기에 더욱이 그러하다. 

 

파키스탄의 고(故)지아 대통령 

기자를 친구로 만드는 뛰어난 재주를 가진 PR인이 한분 있다. 필자가 한국 최초의 영문 경제잡지 비지니스 코리아(Business Korea)편집인 및 발행인이었던 시절 파키스탄 정부의 초청으로 당시 파키스탄을 방문하여 단독 인터뷰를 위해 지아 얼 학(Zia UI-Haq)대통령을 만난 일이 있다. 

인터뷰를 위해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대통령 궁에 도착해서 약 5분간을 기다리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들어가 "대통령 각하, 처음 뵙겠습니다(How do you do, Mr, President?)", 인사를 하니 곧바로 나에 대한 모든 인적사항을 줄줄이 다 얘기하면서 "왜 부인과 같이 오지 않았느냐? 아이들이 둘이라고 하는데 나이차이는 얼마냐?"하는 것이다. 물론 보좌관을 통해 정보를 얻었겠지만 배석지하나 없이 단둘이 독대를 하는데 백년지기가 따로 없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나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좋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지아 대통령은 혼자 앉는 넓직한 의자에서 내려와 내가 앉아있는 3인용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한국과 파키스탄간의 경제협력과 같은 중요한 얘기를 할 때마다 나의 손을 꼭 잡는 것이 아닌가. 약 1시간 30분간 아주 친근하게 인터뷰에 응하는 지아 대통령의 다정한 모습은 PR인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누구도 그의 그런 모습에서 부토 전 대통령을 사형시킨 혁명가 지아대통령의 모습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파키스탄 공보실의 사진담당 직원이 내가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을 칼라 필름으로 촬영해서 필름 1통을 그대로 주었다. 기념사진으로 현상해 주기보다는 보도용 사진으로 용도에 맞게 사진을 확대, 축소해 뽑을 수 있도록 필름 1통을 그대로 주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약 2개월 뒤에 지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서 신라호텔에 머무르게 되었다. 일을 끝내고 밤 11시 반 경 집에 도착했더니 파키스탄 대통령비서실의 전화가 왔었다는 아내의 전갈이다. 약 15~20분내로 신라호텔에 오면 지아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을 전해 받은 아내는 백방으로 나를 수배했으나 그때는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호출기가 많지 않았을 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호텔로 전화를 하니 그 다음날 이름 아침 스케줄 때문에 대통령은 잠이 들었다는 소식을 당시 주한 파키스탄대사가 전해주었다. 당시 지아 대통령은 파키스탄의 강력한 지도자였다. 그는 어떻게 경제를 부흥시키는가 고심하고 있었다. 강력하고 큰 포부를 갖고 있는 한나라의 대통령이 한국의 일개 언론인을 스케줄에도 없이 밤 늦게 만나겠다고 집에 까지 전화를 걸어준 데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필자는 주한 파키스탄 대사와 자주만나 한국과 파키스탄의 관계 증진 방안에 대해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파키스탄의 장관, 국회의원, 실업가 등이 방한 할 때마다 대사관저에 초청되어 그들과의 관계를 증진시키기도 했다. 

인간적인 따뜻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내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PR의 기본임을 고 지아 대통령은 보여주었다. 지아대통령에게는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서 비롯되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바로 그것이 나를 감동시켰던 것이다. 

 

한국 최초의 언론 훈련 실시 

"우리회사는 언론훈련을 실시합니다"고 소개하니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언론관계도 훈련을 받는지 되묻곤 하였다.

그렇다 이제 언론의 생리와 취재 관행과 기자들의 정서를 잘 이해하는 것도 최고 경영자가 가져야 할 필수적인 덕목으로 꼽히고 있다. 이제는 국내에서 "언론훈련"이라는 단어가 아무 거부반응 없이 쓰이는 것을 보고 한국 최초로 언론훈련(media training)을 실시한 보람을 느낀다. 

외국 주요 기업인들의 이력서를 보면 가끔 어느 PR회사에서 제공하는 언론훈련(Media Training)을 받았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 중역은 자기가 전공하고 있는 업무에 있어서는 물론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겠지만, 언제라도 업무수행상 언론인을 만날 수 있는 입장이기에 언론의 생리를 알고 언론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어야만 효과적인 업무 수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훈련을 받는다는 것이다. 최근 내가 경영하는 회사에 부쩍 언론 훈련 요청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한국도 서구처럼 기업체의 중역이나 정부기관의 고급간부가 되면 언론을 상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언론훈련의 수요가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많은 주한 외국기업의 간부들을 훈련시켜 왔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8시까지 사장, 전무, 이사 들을 위해 한국의 언론 상황과 효과적인 언론대응과 위긱발생기 금기사항 등에 관해 강의를 하면서 급변하고 있는 언론대응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또 카메라 앞에서 모의인터뷰를 통해 언론대응술을 익히는 그들을 보면서 효과적인 언론대응은 PR담당중역만의 몫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강의 중 질의 시간에는 그간 의문을 가졌던 사항이나 실제적으로 부딪쳐 본 경험을 털어 놓으면서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다. 국내 많은 한국 기업체들의 홍보실 직원들도 이제 언론훈련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구체적인 프로그램에 대해 문의해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풍토가 외국처럼 사장, 부사장, 상무, 전무, 이사, 부장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성숙하지 못해 언론훈련 프로그램 진행에 어려움이 많다. 

21세기를 흔히 "위기관리의 시대"라고 한다. 한번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사고가 되고 이 위기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기업은 살아 남지 못하게 된다. 이제 위기관리를 홍보실에만 맡길 수 없고, 최고 경영진이 직접 나서서 사태를 수습해야만 하기 때문에 최고 경영진들을 위한 언론훈련은 필수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또 TV 생방송에 출연했을 때 어떻게 회사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도 하나의 주요 과목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그 시점에서 효과적으로 회사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면 위기관리가 쉽게 될 수 있지만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엉뚱한 얘기까지 꺼내면서 신뢰감 없는 얘기를 한다면 위기관리는 점점 더 어렵게 된다. 언론훈련의 참석자들은 거의가 언론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하루 이틀의 간접체험을 통해 언론의 생리와 언론 대응법을 배울 수 있다. 

하루 이틀의 교육이 앞으로 다가올 언론인과의 많은 접촉에서 도움이 될 산 교육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언론훈련은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부적절한 언론대응으로 일어나는 손실은 점점 더 커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훈련을 받는 것은 사전대응이라는 PR의 기본 성격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이다.  

재벌 기업의 총수는 다른 중역들과 같이 교육을 받을 수는 없으니 빠른 시일 내에 단독 교육프로그램을 짜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하였다. 이제 우리 기업의 중역들이나 고급 기관의 간부들도 외국처럼 언론훈련을 받았다는 것을 이력서에 명시하여 고유업무영역에서 전문가일뿐 아니라 언론대응에 있어서도 전문가임을 과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루에 저녁식사는 5번 정도는 해야 진정한 홍보인이죠"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는 국내 최초로 정부 기관 즉, 국정홍보처의 민간컨설팅 업체로 위촉되어 다양한 프로그램과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였고 이와 관련된 많은 경험과 에피소드는 PR업무 수행에도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1999년 회사의 국정홍보처 PR컨설팅이 한 창인 무렵, 나는 각 부처 대변인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 모여 효과적인 홍보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 연사로 초청된 적이 있었다. 정부의 각 부처 대변인들과 주요 인사들이 참여하여 효과적이고 올바른 정부 홍보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는 나에게도 상당히 고무적인 자리임에 틀림없었다. 

나의 발표가 있기 직전 그 당시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이름난 한 장관의 초청 강연을 청강할 수 있었다.

"대변인들께서는 하루에 저녁을 몇 번이나 하시는지요?"

그 장관은 연설 중 갑자기 참석한 모두를 향해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참석한 대변인들은 물론 나 역시도 그 장관의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알기가 어려워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그는 스스로 대답했다.

"적어도 하루에 다섯 번은 해야하지 않을 까요?"

그 장관의 이야기는 이렇다. 일과시간에는 다른 업무로 인해 바쁜 그 장관은 언론사 사람들을 만나기위해 비교적 한가한(?) 저녁 시간을 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도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여러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몇번의 저녁을 먹는 다는 것이다. 신문사 편집국장이나 방송국 보도국장 들을 만나기 위해 일단, 같은 장소에서 2건의 약속을 잡아놓고 자리를 번갈아가며 사람들을 만나 저녁식사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식사가 끝나면 장관께서는 1시간여 후에 다른 식사나 술자리를 갖고 이와 같이 또 몇몇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이어 "언론과의 좋은 관계를 맺어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와 같이 일을 수행합니다"라고 말하며 "홍보담당자인 여러분들은 적어도 하루저녁에 저녁을 3번이상은 해야 홍보를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나는 친구와 저녁을 같이하는 홍보인은 홍보담당자나 대변인으로써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홍보에 있어 접대를 통한 언론과의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런데, PR은 단순한 관계 맺기를 통해 좌우되는 것일까?

공중을 만나 설득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PR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 공중이 기자에만 치우친다면 그것을 과연 올바른 PR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업 홍보 이든 정부 홍보 이든, 홍보가 단순히 사람을 만나고 이를 계기로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이 전부라면, 이와 같은 시스템과 활동은 매우 큰 도움이 되겟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결코 좋은 홍보를 기대할 수 없다.

관계 맺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전략적 PR". 관계 맺기만이 중요하다면 수많은 기업과 정부 조직이 앞다퉈 민간 PR회사에게 PR활동을 의뢰하고, 컨설팅 업무를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략적인 기초하에 PR의 방향과 내용이 정해지면, 거기에 관계라는 것이 좋은 영양제가 되어 보다 좋은 결과를 이끌 수 있을 지언정, 관계를 바탕으로 방향과 내용이 없는 홍보활동을 진행한다면, 이는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설이 끝난 후, 공보관들은 매우 당황해하면서 각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며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모두들은 이제는 인간적 관계 중심의 정부 홍보를 탈피하고, 보다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정부 홍보를 해야 할 시기가 아니겠냐고 서로 강조하고 확인하였다. 당혹스러움과 안타까움속에서도 그러한 공보관들과 대화를 함께하고 그들의 노력의지를 엿보며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한국 무역협회 김재철 회장의 "거센파도를 헤치며" 

동원참치를 아십니까? 아마도 동원참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원참치의 놀랄만한 성장 뒤에는 회사를 창설하고 길러온 김재철 회장의 피와 땀이 서려있다. 

김 회장은 원양어선 선장으로 출발해 동원산업을 세계 굴지의 수산업체로 키워냈을 뿐 아니라 동원그룹 산하에 금융, 전자, 건설 계열사를 두고 왕성한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해양대학교 졸업생 답게 해양에 대한 풍부한 경륜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수산회 회장과 원양어업협회 회장, 국민경제자문위원회 부의장을 역임했고 현재에는 임기 3년의 한국무역협회 회장직을 맡아 4년 이상 이끌고, 최근에는 25 대 회장으로 재추대 되었다. 

여기서 김재철회장의 뛰어난 경영능력과 해양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역협회 회장으로써의 김재철 회장의 PR 역량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흔히들 PR을 언론홍보로 격하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내부직원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이를 통한 비전공유 또한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들이다.  

1999년 한국무역협회 회장의 갑작스런 공석으로 당시 부회장으로 있던 김재철 회장은 무역협회의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취임후 "직원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월급은 두배로 올리자"라며 혁신경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비효율적인 협회 운영이 발견되면 즉시 과감한 수술을 가했다. 또한 적당주의는 절대 통하지 않아 취임 초 직원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무엇보다도 높이 평가하는 김재철 회장의 능력은 바로 귀를 기울이고, 대화할 줄 아는 자세 그리고 무엇보다 직원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정신이다. 그는 늘 직원들에게 "꿈을 가져라. 못살더라도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을 얻을 수 있다"라고 자주 이야기 한다. 그는 직원들의 꿈이 무엇인지 직장 생활에서 느끼는 애환이 어떠한 것인지를 직접 듣고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임직원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호프데이"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매주 1회의 직원대상 아침 강의를 실시하여 왔다. 특강은 8시부터 9시까지 보통 진행이 되는데, 강의 내용은 전체 직원의 국제화 및 전문화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가득 채워져 왔다. 나 또한 특강강사로 초대를 받아 효과적인 위기관리에 대한 강의를 한 바 있다.

한 시간의 강의 동안 직원들의 참여자세는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무엇보다, 김재철 회장의 청강자세는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강당 제일 앞에 앉아 중요한 부분은 메모하고, 궁금한 사항에 대해서는 질문을 서슴지 않았으며, 강의후에는 20~30분 동안 강사인 나와 토론하는 것을 매우 즐겼다.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김회장은 늘 강의에 이와 같이 한결 같은 자세로 임하며 지금껏 한주일도 빠지지 않고 특강을 계속하였으며 이 특강을 동원그룹에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직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외부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며 비판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 국내 굴지의 기업 총수이자 무역협회라는 경제단체의 장인 김재철 회장의 이러한 모습은 그의 회사와 무역협회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는가 하는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CEO의 필수 자질이며, 그것이 김재철 회장에게 녹아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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