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도 PR이 하는 시대

2008년 02월 06일 10시 26분

1992년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중동 전쟁 때 일이다. 이라크의 침공을 받은 쿠웨이트는 미군의 즉각적인 참전 없이는 나라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 하에 미군의 참전을 유도하기 위해 세계적인 PR회사인 힐 앤 놀턴(Hill and Knowlton)에게 특명을 부여하였다. 물론 힐 앤 놀턴에게는 단기간에 6백만 달러를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며, 중동 석유 부국인 쿠웨이트는 오일달러로 PR회사가 전쟁에 본격 개입하게 하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전쟁도 청량음료나 치약같이 마케팅 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미국 CBS-TV의 “60분 쇼“가 꼬집기도 하였으나 힐 앤 놀턴사는 회사 내에서 최강의 팀을 구성하여 ”쿠웨이트 살리기“ 작전에 돌입한다. 우선 집단 심층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를 실시하여 이라크 군인들의 쿠웨이트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잔학상을 크게 부각하는 것이 도덕성을 중히 여기는 미국국민들을 가장 잘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때 이라크 군인들의 잔학상을 실제로 체험한 소녀를 동원하기로 결정한다. 15세된 나이라(Nayirah)라는 소녀가 쿠웨이트의 한 병원에서 이라크의 군인들이 수백 개의 미숙아가 들어있는 인큐베이터(Incubator)를 꺼내 내동댕이쳐서 미숙아들이 다 죽게 되었다는 증언을 미 의회의 인권위원회 증언대에 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애절하게 증언한다. 이 증언의 영향력은 놀랄만한 것이었다. 미국 전역 TV생중계를 통한 방영 직후 순식간에 미군의 참전을 지원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이라의 증언 장면을 담은 비디오 뉴스 릴리스(video news release)가 미국 전역의 주요 언론사에 배포되어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유도하였다.

당시 의회에서는 6명의 상원의원이 인큐베이터 사건을 인용하면서 이라크는 응징의 대상이라고 강조하여 결국 미군의 참전이 결정된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한 달간 무려 여섯 번이나 “인큐베이터 잔학상(incubator atrocities)"을 언급하면서 쿠웨이트를 해방하기 위한 미국의 결정을 역설했다. 결국 핼 앤 놀턴이라는 PR회사가 나이라라는 한 소녀의 증언을 통해, 전 미국 국민들의 도덕성에 호소하여 최종 목표인 미군참전을 얻어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쿠웨이트가 전쟁에서 국가를 구하는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동원한 회사는 광고 회사도, 법률 회사도, 컨설팅 회사도, 마케팅 회사도 아닌 PR회사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간 우리는 PR의 역할이 언론홍보(publicity), 즉 언론매체에 조직이나 상품, 서비스 등을 널리 소개하는 정도의 역할에만 익숙해왔으나 PR은 이같이 전쟁에서 한 나라까지도 구하는 일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얼마 후 뉴욕 타임즈의 기고난(Op-Ed: Opposite Editiorial 즉 사설 맞은편 페이지에 다양한 의견을 게재하는 투고난)에 하퍼스(Harper‘s) 잡지사의 발행인인 죤 맥아더(John MacArthur) 이름으로 기고된 기사에서 15세의 나이라라는 여아는 그 당시 주미 쿠웨이트 대사 사우드 나시르 알-사바(Saud Nasir Al-Sabah)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핼 앤 놀턴사의 PR활동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게 되었다.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공방전이 벌어진다. 미 언론들은 힐 앤 놀턴사가 사전에 증언자가 주미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라는 것을 밝혔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힐 앤 놀턴사의 토마스 에디슨(Thomas E.Edison) 사장은 의회인권위원회에서 그 여아의 신분을 미리 밝혔으며 아버지인 주미 쿠웨이트 대사가 쿠웨이트에 남아있는 가족 친지들에 대한 보복이 두려워 신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요청에 따라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았다고 맞섰다. 많은 언론, PR 관련 인사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자기들의 의견을 피력하여 PR역사상 윤리문제에 관해 가장 심각하게 논의된 사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윤리적인 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겠으나 PR의 역할이 전쟁에서 한나라를 구하는 일까지도 떠맡아 가장 핵심적인 국가의 위기관리 전략, 전쟁 전략까지도 수립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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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의 김경해입니다. 큰생각과 큰PR을 위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by 김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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